Life In Story

 

 

☆ 본머스의 상징 에디 하우

 

영국 프리미어리그 2019/20 시즌 승점 1점 차이로 챔피언십으로 강등이 확정된 본머스는 구단의 레전드이자 상징인 에디 하우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는다고 발표한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디 하우 감독이 구단과 합의하에 쉬고싶다는 의사 표현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고 표현했다. 본머스를 4부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끌어올려 영광의 시대를 만든 감독이기도 한 에디 하우는 무려 10년동안 본머스를 이끌어왔다.

 

격동의 프리미어리그에서 이처럼 오랜 기간 감독을 지낸 인물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 손꼽힌다. 성공과 실패의 순간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는 축구현장에서 장기 근속만으로도 이름을 내 걸 수 있는 에디 하우 감독은 그래서 이번 결정이 축구팬에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 본머스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에디 하우가 본머스의 감독 자리를 내놓으며 팬들에게 공개 편지를 썼다. 1209 단어로 이뤄진 편지에서 하우 전 감독은 본머스에 대한 애정과 팬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하우 감독은 본머스의 2부 강등이 확정된 뒤 구단과 합의 하에 지휘봉을 내려놓기로 결정한 터였다.

 

본머스는 시즌 마지막 경기인 에버턴 원정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분전했지만, 17위 애스턴 빌라(승점35점)에 승점 1점 뒤진 18위에 그쳤다. 본머스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결과다. 지난 6월 셰필드와의 경기에서 호크-아이 작동 오류로 애스턴 빌라가 승점 1점을 얻지 못했다면 강등팀 자리는 본머스 대신 애스턴 빌라의 몫이었을 것이다. 당시 호크-아이는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명백한 골 장면을 놓쳤고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호크-아이 : 골 판독기 - 볼이 골 에어리어 라인을 넘었는지 안넘었는지 판독하는 기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은 하우 전 감독은 2부(챔피언십)로 강등이 확정된 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며 이렇게 말했다.

 

" 지금이 제가 팀을 떠나야 할 적기입니다"

 

에디 하우는 'AFC 본머스' 그 자체였던 인물이다. 에디 하우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본머스'라는 이름은 축구팀이 아닌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어학연수 도시 정도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비단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 역시 '본머스'를 축구와 연결짓기 시작한게 그리 오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1899년에 창단한 AFC 본머스는 그 기나긴 역사의 대부분을 3부와 4부 리그에서 보낸 클럽이다.

 

1980년대의 짧았던 2부리그 시절이 최고 전성기였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던 이 팀은, 에디 하우가 부임한 뒤 클럽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하우 체제의 본머스는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팀이었다. 2008/09 시즌 하우 감독이 부임할 당시 본머스는 4부리그(리그2) 강등이 유력한 팀이었다. 시즌 23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얻은 승점이 단 7점에 불과했고 순위도 24개팀 가운데 23위에 머물러 있었다. 5승9무9패의 성적은 최악까지는 아니었지만 재정 파탄으로 인해 승점을 무려 17점이나 감점당한 탓이다.

 

당연히 모두가 본머스의 강등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4부인 리그2에서의 강등은 단순히 5부로 떨어지는 것만이 아닌 프로 무대에서의 퇴출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잉글랜드 축구는 4부인 리그2까지만 프로 리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하지만 승점 17점을 감점당한 채로 강등권으로 처진 게다가 제대로 급여조차 주기 힘든 재정난의 클럽 입장에선 그럴듯한 감독을 영입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당시 유스팀을 이끌던 만 31세의 에디 하우가 감독 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 것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풋내기' 어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본머스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23라운드까지 승점 7점에 머물렀던 본머스가 하우 체제로 치른 나머지 23경기에서 무려 39점의 승점 (12승3무8패)을 추가하며 21위로 잔류에 성공한 것이다.

 

4부리그 잔류는 하우 감독 전설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듬해 하우 체제로 치른 첫번째 풀타임 시즌 2009/10에 본머스는 리그2 준우승을 차지하며 곧바로 3부리그(리그1)로 승격한다. 이후 번리 감독으로 잠시 갔다가 다시 본머스로 돌아온 하우는 복귀 첫 시즌(2012/13)에 이번엔 2부리그(챔피언십) 승격의 성과를 일궈냈다. 만년 하위리그 클럽이던 본머스에게는 2부 승격조차 1990년 이후 무려 23년만의 일이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하우 감독은 빈약한 스쿼드의 팀을 똘똘 뭉치게 만들더니 2부리그 승격 2년만인 2014/15 시즌 마침내 팀을 창단 이후 처음으로 1부리그(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키기에 이른다. 1899년 창단 이후 무려 116년만에 새 역사를 쓴 것이다.

 

하우 감독 부임을 기준으로 보면 4부리그에서도 강등이 유력하던 팀이 불과 6년 6개월만에 프리미어리그 클럽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프리미어리그 승격이 확정될 당시 에디 하우는 아직 만36세 밖에 되지 않는 여전히 젊은 감독이었다.

 

감독으로 대단한 위업을 이룬 인물이기에 여러모로 아쉬운 강등이긴 해도 본인이 원했다면 얼마든지 팀에 남아있을 수 있는 하우 감독이었다. 하지만 하우 감독은 망설이지 않았다. 팀을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본머스를 떠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 이제는 본머스 서포터로 응원하겠다

 

하우 감독은 2년전 아르센 벵거 감독이 아스널을 떠난 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재직 기간이 긴 감독으로 본머스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에디 하우와 본머스의 인연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에디 하우는 유스팀 시절부터 본머스 유니폼일 입었던 한마디로 '성골 유스' 출신이다. 어릴적 가족을 따라 본머스 인근 도시로 이주한 하우는 유스팀을 거쳐 1995년 12월 만 18세의 나이로 본머스에서 성인 무대 데뷔전을 치른 전도 유망한 수비수였다.

 

본머스는 3부 리그에 속한 작은 클럽이었지만 어린 수비수 하우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소속팀에서의 꾸준한 활약에 힘입어 잉글랜드 21세 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3부리그 선수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다.

 

본머스의 중심 수비수로 성장한 에디 하우는 인근 도시를 연고로 하는 포츠머스에 부임한 해리 래드냅 감독의 눈에 띄었다. 래드냅 감독은 2002년 3월 2부리그 포츠머스 부임 첫 영입으로 에디 하우를 영입했다. 40만 파운드의 이적료는 3부 리그 클럽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본머스를 떠난 에디 하우에게는 줄곧 시련만 닥쳤다. 포츠머스 첫 경기에서 무릎을 다쳐 시즌아웃 된 하우는 2002/03 시즌 개막전에서 복귀전으로 나섰지만 출전 9분만에 또다시 무릎을 자쳐 시즌아웃이 되고 만다. 이번에는 무려 1년 반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한 하우는 결국 이듬해 스윈든을 거쳐 친정팀 본머스로 임대되기에 이른다. 포츠머스에 머문 2년동안 하우가 뛴 경기는 그렇게 2경기가 전부였다.

 

본머스로 돌아온 하우는 언제 부상이 있었냐는듯 다시 맹활약을 펼쳤다. 2002년 3월부터 2004년 여름까지 공식시합에 단 2경기 밖에 뛰지 못했던 하우는 본머스 복귀 첫 해에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당초 3개월 임대 조건으로 본머스에 합류했던 하우의 활약은 본머스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지난 2년 거의 대부분을 부상 병동에서 보낸 '성골 유스'의 부활이 팬심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본머스는 하우를 붙들어둘 형편이 아니었다. 팬들도 이 팀에 그만한 돈이 없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고심 끝에 팬들은 '에디-펀드(Eddieshare)'를 만들어 모금에 나서기 시작했다. 에디 하우 이적료를 팬들이 직접 모아서 내자는 것이었다.

 

많은 팬들의 성원이 이어졌고 결국 21000 파운드(약3천만원) 펀딩이 이뤄졌다. 본머스는 이 금액을 바탕으로 포츠머스와 교섭을 벌여 에디 하우를 완전 영입하게 된다. 이후 2년 여를 더 본머스 선수로 뛴 에디 하우는 그러나 또다시 부상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만29세로 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곧바로 팀의 코치진에 합류한 그는 불과 1년 뒤 어려운 팀 사정으로 인해 갑작스레 감독 대행으로 승격하며 신화를 쓰게 된다. 나머지는 앞서 소개한대로다.

 

 

 

 

 

 

 

 

◎ 선수와 감독으로 보낸 25년만에 내린 힘든 결정

 

본머스를 4부리그 바닥에서 1부리그까지 끌어올린 이후 한동안 에디 하우는 여러 상위 클럽들의 주요 영입 타겟으로 거론됐다. 아스널이 벵거 감독과 결별했을때 후임 후보군에도 하우의 이름이 있었다는 애기가 돌았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오로지 본머스에서만 최고의 성과를 냈던 인물인데다 어쨌든 지금 그는 강등을 피하지 못한 채 물러난 전임 감독 신세다. 한창 '잘 나갈' 때에 비하면 러브콜이 빗발칠만한 상황은 아닌 셈이다. 현지에서의 전망도 불투명하다. 영국이든 해외든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란 예상은 있지만 구체적인 애기는 전무하다.

 

 

에디 하우는 '25년을 몸담았던 본머스를 떠나기로 한 것은 아주 힘든 결정' 이었다며, 일단 가족들과 함게 시간을 보내는 데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본머스는 이미 하우의 동갑내기 친구로 2008년부터 하우의 수석코치로 팀의 모든 역사를 함게 썻던 제이슨 틴드올을 후임 감독으로 임명한 상태다.

 

하우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한 데에는 틴드올의 존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된다. 하우 전 감독이 '전' 이라는 수식어를 떼는 데에 그리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진 않다. 그리고 만일 그런 때가 온다면 하우 감독에게는 본격적인 도전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본머스 그자체' 였던 에디 하우의 25년 로맨스는 일단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그의 또다른 커리어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게 사실이다. 여전히 젊은 그가 본머스 아닌 곳에서 또다른 성공 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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