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Story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그는 누구인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널FC의 10년동안 무명인 골키퍼. 2010년 입단해 임대를 전전하며 간신히 선수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백업 골키퍼. 1군 선수단 중 주급이 가장 낮은 선수. 아스널의 찐 팬이 아니면 이 선수의 이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 않은 선수. 

 

어떻게 보면 이렇게나 수식어가 많은 선수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서러운 닉네임이 많다. 그러나 그는 지난 주말 영국 FA컵 결승전에서 승리를 한 후 받은 우승트로피로 그 간의 서러움을 조금은 씻을 수 있지 않았을 까. 10년의 무명 백업 선수로 지내다 베른트 레노의 부상으로 주전 수문장이 된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우승 후 수훈선수로 꼽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눈물을 쏟는 모습은 수고했다 고생했다 백번은 해줘야 할 정도로 대단한 활약이었고, 긴 무명생활을 보여주는 서러움이었다.

 

 

 

 

 

 

 

 

종료 휘슬이 울린 뒤 BBC 카메라 아에 선 골키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연신 눈물을 훔치던 그는 급기야 화면 밖으로 사라졌고, 곁에서 그를 달래던 주장이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에미의 눈물은 그가 이 경기 이 우승컵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말해줍니다. 에미는 우승컵을 들어올릴 자격이 있어요. 에미가 있어 행복합니다"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는 주말에 끝난 2020 FA컵 결승전에서 아스널의 우승을 이끈 골키퍼다. 우장인 오바메양이 말한 '에미'는 동료들이 그를 부르는 애칭이다. 플래시 인터뷰에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던 에미는, 구단 공식 TV채널과의 인터뷰에서는 또렷한 목소리로 소감을 남겼다.

 

 

"아스널에 속한 지난 10년동안 이런 기회를 얻기 위해 정말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정말 뿌듯합니다. 결승전을 앞둔 지난 1주일 내내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했어요. 아버지께서는 너무 긴장하셔서 별 말이 없으시더라고요. 아마 지금쯤 가족 모두가 울고 있을걸요."

 

인터뷰를 마친 에미는 경기장 한켠에 주저앉아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나누며 다시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림자로 보낸 10년. 찬란히 빛난 10경기

 

아르헨티나 출신 에미가 런던에 처음 건너온 것은 2010년이다. 아직 만 16세의 어린 소년이던 그는 인디펜디엔테 소속 신분으로 아스널에서 입단 테스트를 치뤘다. 아스널 입단보다 인디펜디엔테 재계약에 더 관심이 많던 에미는, 얼마 후 아스널의 입단 제안을 받는다. 어린 나이에 타향살이를 택하는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에미는 빛투성이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일념으로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에미의 아스널 커리어는 대부분 그림자 신세였다. 2010년 아스널에 도착한 그는, 2011년 성인 계약을 맺고 스쿼드에 이름을 오르내렸지만 대개의 시간은 벤치만 덥힐 뿐이었다. 어느새 1군 선수들 가운데 아스널 경력이 가장 긴 고참이 되었지만 아스널 열성팬이 아니라면 그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난 6월 주전 골키퍼 베른트 레노의 부상으로 주전 골키퍼 자리를 대체하기 이전까지 에미는 10년 동안 프리미어리그에 단 6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한 만년 후보 선수였다. 하지만 레노가 이탈한 뒤 6주동안 에미는 지난 10년보다 더 많은 리그 경기에 출전했고 수 많은 선방쇼를 펼쳤다. 그리고, 지난 주말 웸블리에서 열린 첼시와의 FA컵 결승전에서도 수 차례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며 우승에 단단히 한 몫을 해냈다.

 

 

 

 

 

 

 

6차례의 임대. 끊없는 희망 고문

 

한 팀에서 후보선수로 10년을 보내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도 한 번 주전이 확정되면 좀처럼 바뀌는 일이 없는 골키퍼 포지션이라면? 게다가 희망을 가질만하면 팀에선 자신보다 더 경력이 화려하고 몸값이 비싼 골키퍼들을 데려오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아마 대다수는 포기하고 다른 팀으로 떠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에미는 끝가지 포기하지 않았다. 커리어 내내 계속된 임대 신세도 아스널에 대한 에미의 사랑과 꿈을 망치지 못했다. 에미는 지난 10년 동안 4부리그(옥스퍼드 유나이티드)부터 스페인 라리가 (헤타페)까지 광범위한 임대 선수 생활을 견뎌냈다. 지난 10년 내낸 아스널 선수였지만, 이 기간 동안 그가 아스널에서 뛴 리그 경기의 수(6경기)는 임대선수 신분으로 다른 팀에서 출전한 리그 경기 수(55경기)의 10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올 시즌 역시 리그에서의 출발은 비슷했다. 매 경기 벤치만 지킬뿐 출전 기회는 없었다. 달라진 것은 컵 대회였다. 리그컵과 FA컵에 전담 골키퍼로 나서며 팀의 '넘버2' 골키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길었던 희망고문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팀에 찾아온 불운은 에미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브라이튼전에서 상대 공격수 무페이와 충돌해 시즌아웃된 주전 골키퍼 베른트 레노의 빈 자리를 메우는게 그의 역활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체 선수가 아닌 원래부터 주전 선수였던 것처럼 안정적인 수비로 팀을 지켰다. 뛰어난 제공권 장악 능력과 기막힌 선방쇼가 팬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 에미는 답했다. "저는 제가 백업 골키퍼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출전 기회가 없었을 때에도 늘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하려 애썼던 에미는 갑작스레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제 FA컵 우승 트로피의 주인이 되었다.

 

 

 

 

 

 

 여전히 불투명한 미래.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스널11년차' 에미의 현재 계약은 2022년 6월까지이다. 입사년도는 가장 앞서지만 연봉은 1군 선수 중 최저 수준인 104만파운드(약15억원)로 알려져 있다. 에미의 주급 2만파운드(약3천만원)은 현재 전력외로 분류된 팀내 최고연봉자 메수트 외질(주급35만파운드)의 17분의1, 주전 골키퍼 베른트 레노(주급10만파운드)의 5분의1 수준이다.

 

아스널 팬들은 '최고연차' 에미에게 팀이 재계약을 제안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에미는 2020-21 시즌 레노의 부상 여부와 상관없이 더 많은 기회를 보장받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임대나 이적을 원하진 않을 모양이다. 지난 시즌 2부리그(챔피언십) 레딩에 임대되어 팀의 3부 강등을 막는 데에 기여했던 에미는 "이번이 마지막 임대"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긴 무명의 터널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아스널 소속에 대한 자부심도 내비쳤다.

 

"잘 풀리지 않던 시기에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내가 사랑하는 구단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늘 최선을 다해 훈련했고 인내심을 버리지 않은 덕분에 지금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린 에미지만, 부상에서 복귀할 레노 골키퍼와의 경쟁 구도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는 10년이라는 긴 무명의 터널에서 버틸 수 있던 이유를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백업 골키퍼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No.1 골키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훈련해왔어요"

 

에미는 기회가 거의 없던 긴 무명의 시기에도 아내조차 "당신은 왜 그렇게 열심히 훈련하는 거야" 라고 타박할만큼 꾸준히 자신을 다듬어왔다. 그림자로 보낸 길었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그에게 어쩌면 앞으로의 불투명한 미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도전의 기회일지 모른다. 10년 노력의 결실이 눈물로 맺힌, FA컵 우승 직후 에미의 표정은 당분간 오래 기억에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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