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 Story

2019년과 2020년은 토트넘에게 부침이 심한 시기였다. 포체티노 감독 체재로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던 토트넘은 2018/1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며 역대 최고의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으며 급기야 결승전 이후 4개월만에 감독 경질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봉착했다.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포체티노 시대의 뒤를 이은 것은 21세기 최고의 스타 감독 중 한명인 조세 무리뉴다. 11월 A매치 기간에 포체티노 감독을 내보낸 토트넘의 레비 회장은 경질 다음날 곧바로 무리뉴 감독의 선임을 발표했다. 포체티노 감독 경질이 내부적으로는 확정된 지 오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격적인 선임이었다.

 

 

포체티노의 퇴장과 무리뉴의 등장.

 

토트넘 부임 이전까지 무리뉴 감독은 현업에서 거의 1년 가량 물러나 있던 상태였다. 거액의 몸값을 받으며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일하는 모습은 낯설었지만, 특유의 거침없고 유쾌한 언변은 여전했다. 맨유 감독 시절에도 언급했던 케인과 손흥민 등 토트넘 공격진에 대한 애정을 해설위원 시절에도 숨김없이 드러냈던 것을 보면, 무리뉴 감독 입장에선 토트넘의 감독직 제안이 무척 반가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리뉴의 토트넘 감독 부임은 여러모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무리뉴 감독은 2002년 1월 포르투에 부임한 이후 단 한번도 시즌 도중 지휘봉을 잡은 일이 없다. 첫 해외진출인 첼시(2004년7월) 감독직을 시작으로 무리뉴는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 첼시(2기), 맨유에 이르기까지 모든 팀에서의 업무를 7월1일에 시작했다.

 

 

즉, 프리시즌을 온전히 지휘할 수 있는 여건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첫 시즌부터 스스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래서 성적이 좋건 나쁘건 책임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었다. 하지만 토트넘은 달랐다. 2019년 11월20일 무리뉴 부임 당시 토트넘의 성적은 리그 14위였다.

 

아직 리그의 1/3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고 리그 5위와의 승점 차는 단 3점에 불과한 14위였지만 12경기에서 거둔 3승5무4패의 성적이 부진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리그4위 맨체스터시티(25점) 보다 이미 11점이나 뒤처진 승점(14점)은 포체티노 감독 경질에 쉽사리 반박하기 힘든 지표였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현재 프리미러이그가 종료된 상황에서 토트넘은 최종 6위까지 올라왔다. 포체티노의 12경기에서 얻은 승점 14점(평균 1.17점)과 무리뉴의 26경기에서 얻은 승점 34점(평균 1.31점)의 차이의 변화도 의미 있지만 가장 달라진 것은 원정 경기에서의 결과다. 

 

 

 

 

 

 

 

'원정 무승'의 포체티노 와 '원정 선전' 무리뉴.

 

포체티노 감독 시절의 토트넘은 작년 1월 당시 최하위권이던 풀럼을 상대로 극장골 승리를 거둔 이후 10개월간 원정 승리가 없는 팀이었다. 반면, 무리뉴 감독은 부임 후 첫 경기였던 11월 23일 웨스트햄 원정에서 곧바로 승리를 거두며 토트넘의 길었던 원정 무승의 고리를 끊었다. 이후 8개월 동안 무리뉴의 토트넘은 울버햄튼, 애스턴빌라, 뉴캐슬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며 13경기에서 4승5무4패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참고로 올시즌 포체티노 체제에서 토트넘이 거둔 원정 성적은 6경기 3무3패였다.

 

무리뉴 감독의 축구가 구식이며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성과' 측면에서 보자면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포체티노 시절 하락세에 있던 팀을 시즌 중반에 물려받은 무리뉴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더욱이 무리뉴 부임 후의 토트넘은 해리 케인, 손흥민, 시소코, 요리스, 은돔벨레, 델레 알리, 다이어, 베르흐베인, 데이비스 등이 부상과 징계 등으로 번갈아 길게 결장한 팀이었다. 게다가 여름 이적 시장에서 거액에 영입했으나 실제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한 선수들이 존재나 시즌 초반 깊은 하락세에 빠져있던 팀 분위기 역시 무리뉴가 스타트라인보다 뒤에서 출발하는 이유중 하나였다.

 

 

이러한 평가는 무리뉴 감독을 옹호하기 위한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토트넘은 홈에서의 선전과 '챔스 준우승' 후광 효과에 가려져 있긴 했지만, 지난 시즌 하반기부터 경기력이 하향세로 접어든 팀이었다.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강력한 전진 압박과 속도감있는 역습을 주무기로 삼았던 토트넘은 주력 선수들이 나이가 들고 체력이 고갈되면서 장점을 잃은 상태였다. 20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맨시티전에서 손흥민, 4강 아약스전에서 모우라가 폭팔했고, 여기에 중요한 때마다 VAR이 오심을 잡아주는 행운이 겹쳐 거둔 '챔스 준우승'이 감춰준 많은 문제점들은 이어진 2019/20 시즌의 시작부터 제대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브라이튼 원정 0-3 참패나, 바이에른과의 홈 경기를 2-7로 내준 것은 단순히 1~2경기 패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적절한 교체 타이밍 적절한 인물 선임.

 

포체티노의 토트넘은 2019/20 시즌 첫 12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지거나 비기는 경기를 펼쳐 놓친 승점만 무려 12점에 달했다. 포체티노 해임 당시 12경기에서 거둔 14점의 승점은 토트넘이 최근 11시즌 동안 기록한 가장 낮은 스코어였다. 당시의 토트넘은 분명히 변화가 필요한 팀이었다.

 

시즌 도중 감독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성과주의' 최고봉 중 하나인 무리뉴 감독을 택한 레비 회장의 선택은 그래서 납득가는 면이 있따. 특히 엄청난 빛을 떠안고 지은 새 경기장으로 대표되는 새 시대의 토트넘은 관중 수익 증대와 스폰서십 확대와 같은 마케팅적 고려가 필수적인 팀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바라본다면 트로피에 스타성까지 갖춘 무리뉴를 택한 것은 최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최종전에서 무리뉴 감독이 '7연패' 부진에 빠진 팰리스를 상대로 선제골을 일찍 넣고도 수비 축구를 시전하며 간신히 비긴 것은 분명 환영받기 어려운 결과였다. 게다가 무승부로 6위가 확정되자 크게 환호하는 무리뉴 감독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엇갈린 평가를 받을만한 제스쳐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적 재미보다 결과에서 오는 평가를 더 높은 가치로 두는 무리뉴 감독에게는 UEFA 대회 진출의 마지노선인 리그 6위 확보는 대단한 성과였을 것이다. 비록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토트넘 입장에서도 금전적 손실과 선수 이적 시장에서의 핸디캡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성과였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있는 지표였다.

 

그러나 무리뉴 감독의 올 시즌이 괜찮았다고 자평한다해도 이것을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으로까지 연결짓기는 몹시 곤란하다. 지금의 토트넘은 무리뉴 감독이 포르투 이후 맡았던 모든 팀들 가운데 가장 전력이 약하고 스쿼드가 얇은 팀이다. 더군다나 이적 시장에서 쓸 수 있는 자금의 여력도 부족한 편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 무리뉴 감독의 보수적인 경기 운용은 더 폐쇄적으로 강화될 공산이 크다.

 

 

 

 

 

 

 

뉴캐슬전을 통해 바라본 다음 시즌의 기대와 우려

 

포체티노 시절과 무리뉴 감독의 정반대 경기 스타일을 쉽게 비교하려면 올시즌 두 감독이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펼친 2경기를 보면 된다. 토트넘은 포체티노 감독 시절인 작년 8월 26일 뉴캐슬을 홈으로 불러들여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고도 0-1 패배를 당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공을 많이 빼앗긴 선수인 조엘링톤에게 골을 허용했다. 이날 토트넘은 79:21의 압도적인 점유율 우위를 기록했고 슛팅 수도 16:6으로 압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무득점 패배였다.

 

반면, 지난 7월 16일 뉴캐슬 홈에서 열린 36라운드 맞대결에서 토트넘은 원정임에도 3-1 승리를 거뒀다. 감독 커리어 내내 뉴캐슬 원정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무리뉴 감독은 이날 승리에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도 토트넘이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토트넘은 포체티노 시절 홈에서 뉴캐슬에 79:21로 점유율을 압도하는 경기를 펼쳤지만 무리뉴 체재로 치른 이 경기에서는 52:48로 점유율이 밀렸다. 슛팅수도 7:20으로 뒤집어졌다. 

 

 

패스 통계를 보면 두 감독의 축구가 보여주는 차이는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올 시즌 뉴캐슬의 패스 성공 회수를 가장 많이 기록한 경기와 가장 적게 기록한 경기는 모두 토트넘전이다. 포체티노의 토트넘을 상대로는 최소인 142개의 패스를 기록했고, 무리뉴의 토트넘을 상대로는 3배가 넘는 440개의 패스를 성공시켰다. 두 감독이 같은 팀을 상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랐는 지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 셈이다. (뉴캐슬의 시즌 전체 경기당 평균 패스 성공 회수는 262회다)

 

물론, 위에 열거한 지표들은 '차이'를 드러낼 뿐이며, 그 자체로 '우열'을 가리는 데에 쓰일 수는 없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이 볼 점유에 연연하지 않으며, 패스의 회수나 공격의 빈도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포체티노 감독 시절에 비하면 훨씬 더 보수적인 팀이 되었다는 의미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성은 더 짙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성과 제일주의 - 성적 상승 예감 그러나 재미는 보장 못해.

 

시즌 막판 무리뉴 감독이 거둔 성적은 다음 시즌의 토트넘을 미리 보여주는 리포트라 할 수 있다. 토트넘은 32라운드 셰필드전 1-3 패배 이후 6경기 연속 무패(4승2무)를 달리며 시즌을 마감했는데 이 중 무실점 경기는 3경기였고, 경기 평균 0.5실점에 그쳤다.

 

점유율과 공격 빈도 모두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득점이 저조한 것은 아니어서 3경기에서 2골 이상의 멀티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수비를 중요시 여기면서도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들(케인,손흥민)을 역습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다음 시즌 토트넘은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예상하는 다음 시즌 무리뉴의 토트넘은, 올시즌보다 더 많은 승점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 상대팀들의 성적 여부에 따라 순위 상승 가능성도 높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포체티노 감독 시절에 비해 찬스가 적고 공을 갖고 움직이는 시간이 줄어들었던 올 시즌 하반기의 모습은 계속 유지되거나 더 강화될 것이다. 한마디로 다음 시즌의 토트넘은 더 재미없어질지언정 성적이 더 떨어질 리는 없을 것이다.

 

손흥민이 이 팀에서 뛰는 한 올 시즌 막판 한국팬들이 경험한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운 심정은 다음 시즌에도 계속될 확률이 높다고 본다. 토트넘 경기를 보면서 설레는 마음을 갖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무리뉴 감독의 축구는 늘 그래왔고, 올 시즌에도 그러하였으며 다음 시즌에도 달라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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